티스토리 뷰
-요약
듀크대학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연구 중심의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1838년 감리교와 퀘이커 신도들이 세웠으며, 1892년 더럼으로 이전했다. 1924년 담배 및 전력 사업가 제임스 듀크가 선친을 기리기 위해 듀크대학교로 개명했다. 여러 대학평가에서 미국 10위권 이내의 최상위권 대학교로 평가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생존 억만장자 14명이 동문이다.
1. 개요
듀크대학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연구 중심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1838년 감리교인과 퀘이커 교인들이 트리니티 마을에 처음 브라운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1892년 더럼으로 이전했다. 1924년 담배 및 전력 사업가 제임스 듀크가 듀크재단을 설립하고, 아버지 워싱턴 듀크를 기리기 위해 학교 이름을 듀크대학교로 변경했다.
듀크대학교의 더럼캠퍼스는 35km가 넘는 부지에 3개의 하위 캠퍼스가 이어져 있으며, 메디컬센터가 있따. 버포트에는 해양연구소가 있다.
더럼의 웨스트캠퍼스는 64m높이의 듀크예배당을 캠퍼스 중앙에 둔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며, 메디컬센터와 인접해 있다. 웨스트캠퍼스에서 24km 떨어진 이스트캠퍼스는 1학년 생이 거주하는 곳으로 조지아 양식의 건축물들이 있다. 듀크대학교는 싱가포르의 듀크 NUS(싱가포르국립대학교) 의과대학원(2005년 설립)과 중국 쿤산의 듀크쿤산대학교(2013년 설립)등 아시아에 두 개의 공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동문과 교수 및 연구원 가운데 1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따. 튜링상 수상자는 3명이다. 교수진 54명이 인용이 많은 연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전 세계 대학에서 8위를 기록했다.
동문으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등이 있으며, 생존 억만장자는 14명이다. 듀크대학교의 직원은 4만 3000여 명으로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민간 고용주이며, 여러 미디어에서 우수 고용주로 선정됐다.
2. 역사
듀크대학교는 1838년 브라운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브라운 학교는 란돌프 카운티 트리니티 마을에 설립되 시골의 작은 사립학교였다.
감리교인과 퀘이커교도의 모임인 유니온인스티튜트 소사이어티가 조직한 브라운 학교는 노스캘로라이나주가 헌장을 발표한 1841년 유니온인스티튜트아카데미가 됐다. 아카데미는 1851년 노멀칼리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1859년 감리교회의 지원 때문에 트리니티칼리지로 다시 개명됐다.
트리니티칼리지는 1892년 더럼으로 이전했따. 이는 대부분 줄리안 카와 워싱턴 듀크의 선심 덕분이었다. 유력하고 존경받는 감리교도인 두 사람은 담배와 전기산업으로 부를 쌓았다. 줄리안 카는 1892년 원래의 더럼 캠퍼스를 위한 땅을 기부했는데 이는 이스트 캠퍼스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워싱턴 듀크는 초기자금과 건설비로 8만 5000달러를 학교에 기부했고, 1896년 1899년 1900년에 각각 10만 달러씩 추가로 지원했다. 듀크의 기부에는 대학이 여성에게 문을 열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둔다는 조건이 달렸다.
워싱턴 듀크의 아들로 역시 담배 및 전력 사업가인 제임스 듀크는 1924년 4000만 달러의 신탁기금으로 듀크재단을 설립했다. 기금에서 나오는 수입은 병원과 고아원 감리교회, 트리티니칼리지를 포함한 4개의 대학에 분배됐다. 당시 트리니티칼리지의 총자인 윌리엄 퓨는 듀크가문의 관대함을 기리고, 트리니티라는 이름을 가진 무수히 많은 다른 대학과 구별하기 위해 학교명을 듀크대학교로 개명하자고 주장했다. 제임스듀크는 처음에는 개명이 자기 실속만 챙기는 것으로 치부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부금에서 나온 돈으로 대학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원래 캠퍼스인 이스트 캠퍼스는 1925년~27년 조지아 양식의 건물로 재건축됐다. 대다수가 고딕양식의 대학건물인 웨스트 캠퍼스는 이스트 캠퍼스 서쪽 1.6KM 떨어진 곳에 1930년대 까지 완공되었다. 웨스트 캠퍼스의 건설은 1935년 듀크 예배당이 세워지면서 절정을 이뤘다.
1896년 워싱턴 듀크의 기부 조건인 동등한 여성 지위에 따라 4명의 여성이 대학에 등록했다. 3명은 교원의 딸이 었다. 1903년 워싱턴 듀크는 신탁관리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내건 조건이 기부의 유일한 제한사항이었다고 언급하면서 이 조항을 처로히해달라고 요청했다. 1897년 여성기숙사가 건설되었고, 워싱턴 듀크의 딸 이름을 따서 메리듀크빌딩으로 명명됐다. 1904년까지 54명의 여성이 등록했다. 1930년 여성대학이 설립됐다. 이는 1924년 트리니티대학으로 설립된 남성 학부대학에 짝을 맞춘 것이다.
듀크대학교에서 1903년부터 가르친 공학은 1939년 별도의 대학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중 듀크대학교는 학생들이 해군장교가 되는 길을 제공하는 V-12해군 대학훈련프로그램에 참가한 전국 131개 대학 중 하나가 됐다.
1963년 신탁관리이사회는 공식적으로 학부대학을 분리시켰다.
1961년 첫 흑인 대학원생이 입학했으며, 흑인 학부생은 1963년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원은 1966년까지 모두 백인이었다. 여성대학은 1972년 트리니티대학과 병합되어 남녀공학 교양대학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부터 대학 행정실은 대학의 명성을 국내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장기계획을 시작했다. 학제 간 업무가 소수민족 교수와 학생을 선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조됐다. 이 기간 동안에 미국에서 최초로 보조의사 학위프로그램의 발상지가 됐따. 듀크대학교병원이 1980년 완공됐다. 2년 후 학생회관이 세워졌다.
1986년 남자 미식축구팀이 처음 미국대학체육협회 챔피언이 되었고, 남자 농구팀이 1991년과 1992년, 2001년, 2010년, 2015년에 챔피언이 되면서 미식축구팀의 뒤를 이었다. 듀크대학교는 계쏙 성장하면서 학술 및 유력 연구기고 남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7년간 진행한 모금행사 듀크포워드로 2017년까지 38.5억 달러를 모았다.
3. 저명한 졸업생
듀크대학교 로스쿨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전교 3등으로 졸업한 제37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가장 대표적인 동문이다. 전 교통부장관 엘리자베스 둘, 제33대 칠레대통령 리카르도라고스, 대통령 후보로 세 번이나 출마했던 하원의원 론볼과 그의 아들 상원의원 랜드 폴 및 보훈성 장관 에릭 신세키와 미국의 18대 합동참모의장 마틴뎀프시도 듀크 출신이다.
재계에는 애플 CEO 팀 쿡,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칼라일 그룹의 설립자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회장, 전 제너럴 모터스 회장 릭 왜거너, 전 모건 스탠리 CEO 겸 회장 존 맥, 빌게이츠의 부인이자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설립자 멀린다 게이츠 등이 있다. 배우로는 한국계 미국인 켄 정이 의학 예과와 동물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계에는 전 NBA농구선수 그랜트 힐이 있고 한인 동문으로는 현재 LG유플러스 부회장(CEO)인 이상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