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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캠퍼스
1. 개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는 독일에서 최고의 1위 대학교로 꼽힌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대학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로이센 왕국의 자유주의적인 교육 개혁가이자 언어학자였던 빈헬름 폰 훔볼트에 의해 1810년 베를린 대학교로 창립되었으며 그가 구상한 이 대학의 모습은 다른 유럽과 서방 대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26년 프리드리히 빈헬름 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이후 대학교가 위치해 있던 거리의 이름을 따서 운터덴린덴 대학교(Unibersitat unter den Linden)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1949년 창립자와 그의 형제였던 자연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기념하여 베를린 홈볼트 대학교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역사
1933년 나치의 집권으로 나치즘 교육의 장이 되고자 했던 베를린 대학은 나치 독일의 패망과 함께 폐교되었다가 1946년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다시 개교하였다. 그러나 냉전과 함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서독의 서베를린에서 베를린 자유대학이 1948년 별도로 개교하였따. 이후 베를린 대학은 1949년 동독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에 의해 훔볼트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9년 동독 붕괴 이후에도 이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1989년 동독의 붕괴 이후 베를린 대학은 서독의 많은 교수들을 채용하는 한편 서독의 다른 대학들과 같은 교육과정을 수립하였다.
3. 캠퍼스
1) 대학본관
베를린의 자랑거리인 미테(Mitte)의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한복판에 있기에 대학 찾기는 아주 쉽다. 다만 이는 총장실이나 입학처, 학생식당 등이 있는 본관(Hauptgebaude)이다. 많은 독일 대학들은 한국식 캠퍼스를 갖추고 있지 않은데, 훔볼트대도 단과 건물들이 미테 곳곳에 흩어져 있다.
게다가 수학·자연과학 학부(이른바 아들러스호프 캠퍼스)는 미테가 아니라 아들러스호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본관은 본래 호엔촐레른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하인리히 왕자 궁전(Palais des Prinnzen Heinrich)이었다. 건축물 자체가 18세기의 바로크 스타일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역사성 높은 유적이면서 베를린 최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종합대학의 본관이라는 특수성도 돋보이기에 연간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관강명소 중 하나로 발돋움해 있는 상황
정문 앞 및 정문과 건물 사이의 정원을 낀 포장길에 자주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평범한 학술 서적은 물론 동독 시절의 서적, 배지, 우표 같은 기념품들도 같이 구입할 수 있다. 중앙홀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 대학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훔볼트 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다.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 벽에는 이 대학 졸업생인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한 명언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1953년에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발의로 장식된 이 문구를 놓고 동독 붕괴 이후 맹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과거사 청산을 이유로 청거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실제로 대학 본부도 철거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옛 동독 관계자 들과 진보 지식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철거 안에 격렬하게 반발하였고, 결국 1998년에 대학 평의회가 보존하기로 결론을 냈다. 이 금박 장식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강객들이 꽤 많다.
각 층 곳곳에 대학 출신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 사진이 모여 있는 2층 중앙부가 유명하다. 아무래도 아인슈타인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편이다.
2) 중앙도서관 '그림 센터'
이 대학의 중앙도서관은 오랜 기간 베를린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과 역사를 공유해 왔는데, 1831년에 대학 중앙도서관이 창립되기 이전엔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동시에 대학 중앙도서관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앙도서관 소재지가 국립도서관의 관할 구역인 도로텐슈트라세 27(Dorotheenstabe27)이었기에 완전한 독립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참고로 국립도서관이 1913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까진 베를린대 본관 맞은 편인 베벨플라츠 2의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현재 이 건물엔(법대 도서관을 포함하는) 법대가 상주하고 있다.
그러다 2005년부터 국립도서관을 보수,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헤시셰 슈트라세 1~2의 건물이 중앙도서관의 임시 거처가 된다.
이후 2009년에 이 대학에서 강사로 활약했던 그림 형제를 기려 명명한 야코프 빈헬름 그림 센터가 게슈비스터 숄 슈트라세 1~3에 개관하며 진정한 의미로 독립한 중앙도서관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대학에는 각 학과마다 도서관들이 따로 존재했지만, 새로운 중앙도서관이 개관하며 상당수 도서관들이 문을 닫고 소장 자료들을 모두 중앙도서관으로 옮겼다. 현재 남아 있는 도서관 분관은 총 10곳이다.
그림 센터는 대학의 랜드마크로서, 테라스식 열람실과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미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독일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며,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언론 보도를 탔을 정도로 건축물로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도서관임에도 관강객들이 많고 아예 도서관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도 존재할 정도다.
하지만 개관 이후 내부 시설이 급속도로 낙후되고 말았다. 독일의 대학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공공시설로 간주하기에 별다른 제재 없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데다, 상술한 대로 관강객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서 사용자 숫자가 상당히 많고 심지어는 노숙인들의 왕래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시설관리를 철저하게 해오질 못했는데 특히 화장실이나 꽤나 지저분한 편이다. 다행히도 2019년 후반기에 보수 공사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