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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졸업자 사회 진출 현황

 

1. 개요

칭화대학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베이징에 있는 대학으로, 국가중점대학 중 하나이다. 

1909년 청밀에 유미학무처 설치 후, 1911년 청밀 황실 궁원 칭화원에 대학교육을 위한 칭화학당이 설립되었으며, 1912년에는 칭화학교, 1928년에는 국립칭화대학, 1949년에는 칭화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칭화 대학은 원래 본교에서 학부과정을 공부한 학생들을 미국에 파견하여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과정을 밟게 하는 교육자를 양성하는 학교였다. 

칭화대학은 개교 이래로, 미국의 교육적 뒷받침에 의하여 전통적으로 강한 이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주룽지, 후진타오, 시진핑 등을 포함, 현재 중국의 주요 정치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중국 최고 명문 대학 중의 하나이다.

칭화대학은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세계 최상위 26개 대학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2. 역사

칭화대학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하이덴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화단 사건에서 얻은 배상금을 미국이 중국 베이징 정부의 교육 발전에 환원하기로 함에 따라 1911년에 '칭화학당'으로 설립되었다. 

'칭화학당'의 전신은 미국으로 유학생 파견을 위하여 1909년과 1910년에 세워진 유미학무처와 유미이업관이다. 

칭화학당은 1912년에 칭화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칭화대학은 원래는 본교에서 학부과정을 공부한 학생들을 미국에 파견하여 학사, 석사, 박사학위 밟게 하는 교육자를 양성하는 학교였다.

 

졸업생들은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간 뒤 미국 대학의 3학년 과정으로 자동 편입되었다., 1925년부터는 중국학의 연구생 교육을 위한 칭화 국학 연구원을 운영하였고, 이듬해에는 4년 학제의 대학으로 변경되었으며, 1928년에는 중화민국 교육부에 의해서 외무부와 공동 관할하는 국립 칭화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칭화대학은 1929에 문학원, 이학원, 법학원등 단과 대학 체제를 확립하였고, 1930년에는 대학원을 설치하였으며, 1932년에는 공학원을 설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7년 8월에, 중화민국 국민 정부는 국립 칭화대학, 국립 베이징 대학, 사립난카이 대학을 모아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한 후난성 창사에 국립 전시 임시 대학을 구성하였고, 1938년 4월에는 원난성 쿤밍에 국립 서남 연합대학을 설립하였으며, 국립 칭화대학의 메이이치가 대학 교장 및 교무위원회 주석을 맡아 교무를 주재하였다.

 

중화민국 최고 중심도시 중 하나였던 베이핑에 속해 있던 허베이성 일대가 대학 측의 평화 발전 추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 함락된데 따른 중화민국 정부와 학계의 대응이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양전님과 리정다오는 전쟁 당시에 이 대학에서 학업 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하였다. 중화민국이 중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국립 전시 연합 대학은 자동 해산하였고, 세 곳의 대학은 1946년에 이전의 대학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 1946년에 가서 중국 구민 정부와 중국 공산당 사이에서는 전쟁이 다시 발발하였고, 국립 칭화대학은 1949년에 중화인민 공화국의 성립 이후로 '칭화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50년 6월 북한의 침공에 의한 한국 전쟁의 발발 이후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칭화 대학은 1952년, 1953년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경제학, 법학, 농학 부문 외에도 공학 일부 학과의 교육을 중단하였고, 교원들이 타 대학으로 강제 진출되었으며, 칭화 대학은 폐교한 옌징 대학 공과 3과, 베이징 대학 공과 4과 일부 교원을 흡수한 채로 8개 학과를 지닌 공과대학으로 대학 규모가 축소되었다.

 

칭화 대학은 1980년-1990년을 거쳐 2000년대 이후로, 공학 부문을 확대 개편하였고, 자연과학, 경제&경영, 인문학, 법학, 사회과학, 생명과학, 공공관리, 커뮤니케이션, 예술&디자인, 의학 및 약학 등의 단과대학, 대학원, 연구소 등을 차츰 복원하거나 설립하였다.

 

칭화 대학은 삼일 운동 이래로, 한국인들이 내왕한 베이징의 서교 오도구를 비롯하여, 칭화과기원, 칭화퉁팡, 중관춘 과학기술 단지 등을 인근에 두고 있고, 이화원, 원명원 등의 유적지가 가깝게 자리해 있으며, 현재 칭화대학 의학원은 중화민국의 옛 개화기에 미국에 의해서 설립된 베이징 협화 의학원과 의학, 생명과학 등의 분야에서 학술적 통합 관계를 맺고 있다.

 

칭화 대학은 오늘날에 와서는 교육자 출신의 후허핑, 천지닝 등을 비롯하여, 경제학과를 졸업한 장궈칭, E-MBA를 졸업한 리시, 후하이 펑,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의 양웨 등이 현재 주요 동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3. 졸업자 사회 진출 현황

칭화대와 북경대는 중국 최고 명문 대학으로 불리는 만큼, 졸업자에 대한 향후 거취도 중국 내에서는 매년 화제거리다. 졸업 후 거취가 정해진 칭화대 졸업생은 2022년 기준 약 98%에 달한다. 물론 학과마다 취업률의  편차는 다소 있지만, 평균 95% 이상의 취업성공률을 보이는 칭화대 졸업생들은 "졸업만 하면 취업할 수 있는데, 뭘 고민하냐"라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학부 졸업생 중 무려 80%에 달하는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 또한 유학을 희망한다고 한다.

 

2021년 기준 칭화대 학사, 석사, 박사 졸업생 중 취업자는 총 3669명이며 이중 70%는 안전성이 보장된 '철밥통 직장'을 택했다. 이는 2019년과 2020년에 비해서도 높아진 수치다. 비율을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15.8%는 당정부기관에, 30.3%는 사업단위에, 23.8%는 국유기업에 취직했다. 민영기관과 외자기업에 취직한 졸업생 비율은 각각 26.8%와 2.9%로 합쳐서 30%를 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로 중국 역시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명문대 학생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안정적인 직장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민국 공무원 시험 지원자가 코로나 이후 급증한 것과 같은 맥락.

 

본과 유학생 또한 졸업 후에는 중국인 졸업생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특히 중국 기업 같은 경우에는 거의 모든 기업에서의 취업이 보장된다고 봐도 무방하며 해외 유명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수요를 잡기 위한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그 나라 대학, 대학원 졸업자를 선호하는 편인데, 칭화대학 같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의 경우 졸업자의 수요가 끊이지 않는 추세이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인 칭화대 이공계 졸업생들은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삼성, LG, SK, 포스코등 대기업 취직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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